여기자 ‘-20도 1박 2일’ 혹한기 훈련을 가다 ②

1편에 이어

◆ 궤도 정비 및 숙영지로 이동<오후 5시>



기동 훈련은 약 2시간 가량 계속 됐다. 조종수와 부 종조수 등을 제외한 병사들은 대부분 안에 앉아 이동했다. 전설의 레이서 미하엘 슈마허에 버금가는 현란한 솜씨로 기자가 탄 장갑차는 울퉁불퉁한 산 길을 곡예 넘듯이 달렸다.

수색 임무를 수행했던 진지에 다시 도착했을 때 해는 벌써 기울고 있었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기자를 포함한 소대원들은 텐트를 치고 ‘운명의 하룻밤’을 보내게 될 숙영지로 이동해야 한다.



험한 산길을 달리느라 느슨해진 궤도를 다시 팽팽하게 조이고 이동 준비를 했다. 양주 시에 있는 숙영지는 이곳에서부터 장갑차로 1시간 정도를 부지런히 가야 도착하는 거리다.

숙영지로 향하는 여정에서 조종수 자리는 다시 반납하고 이번에는 장갑차 안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장정 6명이 앉아 이미 꽉 찬 의자에 살짝 엉덩이만 걸치고 이동했다.

1시간 여 동안 병사들과 훈련 중에는 못 나눴던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입대했다는 이상훈 일병은 “추운 날씨에 훈련을 하다 보면 집에 계신 부모님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면서 “미처 효도를 다 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 텐트 치기 <오후 6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 지 1시간 만에 도착한 숙영지는 그야 말로 벌판이었다. 소대장은 우리가 오늘 자야 할 곳이라면서 근처 야산을 가리켰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시각, 더 늦기 전에 텐트를 치라는 명령을 받고 병사들과 함께 생애 처음으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오후 6시가 넘자 강추위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 앞에서 두터운 군용 양말도 무용지물이었다. 기온이 뚝 떨어지자 촬영 장비도 문제를 일으켰다.

6mm비디오 카메라는 배터리가 얼어 방전이 됐으며 카메라 렌즈에 서리가 꼈다. 이 상황을 간단히 메모하려고 보니 볼펜 잉크도 얼어 나오지 않았다. 기온계 수온이 영하 15도를 가리키자 이제 진짜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는 구나 싶었다.

텐트를 치는 바쁜 손놀림이 이어지는 가운데 간간히 “장갑 끼십시오. 안 끼면 부상 당합니다.”라는 우려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장갑을 껴 감각이 무뎌지자 몇몇 병사들이 장갑을 벗었으나 혹한에 손이 텐트용 팩에 순식간에 얼어 붙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병사들의 고된 몸을 누일 6인용 텐트와 간부용 3인용 텐트 10여 채가 완성이 됐다.

◆ 뒤늦은 저녁식사<오후 8시>

드디어 저녁식사 시간이 돌아왔다. 몇 시간 전부터 배가 텅 비어 있었으나 고생하는 병사들을 보니 한가롭게 배고픔 투정을 부릴 상황이 아니란 걸 알았다.

완성된 텐트에 모포와 침낭 등을 깔았더니 저녁이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개선장군이 전장에서 이긴 뒤 금의환향을 했다는 소식이 이렇게 기뻤을까.

저녁 메뉴는 주먹밥이었다. 어릴 적 가끔 소풍에 싸가는 작고 앙증맞은 주먹밥을 기대하면 실망이 클 것이다.

김치 볶음밥을 넉넉하게 일회용 비닐봉지에 넣은 것이 주먹밥이다. 병사들은 “비닐봉지의 매듭을 풀지 않고 모서리를 살짝 찢어 젤리를 짜먹듯이 먹으면 편리하다.”고 귀띔해줬다.

아무거나 잘 먹는 식성이라 주먹밥의 맛도 훌륭하게 느껴졌다. 가끔 큼지막하게 썰은 고기가 씹히는데 그 맛이 쏠쏠하다.

먹다 보니 따뜻했던 주먹밥이 얼어 얼음이 씹혔으나 시장은 최고의 반찬, 잡채밥에 이어 “둘이서 먹어도 충분할 양”이라고 했떤 주먹밥도 깨끗하게 다 먹었다.

간식으로 지급된 군용 포도맛 음료수인 ‘맛스타’는 꼭 맛을 보고 싶었지만 꽝꽝 얼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급한대로 퍽퍽하지만 건빵 한 봉지를 뜯어 먹고는 ‘맛 없는 과자’라는 평생 안 풀릴 뻔 했던 건빵에 대한 오해가 해소됐다.

◆ 혹한 속 취침 <오후 9시 30분>



시계바늘이 오후 9시를 가리키자 소대장은 경계 근무 병사를 제외한 나머지에게 잠자리에 들라고 명령했다. “이제 올 것이 왔구나.”라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취재 준비 과정에서 접했던 만화와 체험 글 중 90%는 야외 취침을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묘사했다.

‘병사들의 어머니’인 고수혁 행정보급관이 기자의 텐트를 찾았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추워 새벽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질 것이니 단단히 준비해 자라.”면서 발이 닿을 침낭 아래 쪽에 핫팩을 두 개를 넣어두면 견딜만 할 것이라고 조언해 줬다.

준비해둔 핫팩을 발에 2개, 허리와 배쪽에 각각 1개 씩을 넣고 눈을 감았다. 10년 넘게 익숙했던 침대를 떠나 보는게 낯설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잊을만 하면 불어오는 찬 바람이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으나 언제인지 모르게 잠에 빠져 들었다.

새벽 1시 께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핫팩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한 덕에 발쪽의 추위는 견딜만 했지만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이제야 털어놓건데 병사들과 단체 행동을 하다 보니 여자인 기자는 화장실 문제가 골치였다. 훈련을 마칠 때까지 초인적인 힘으로 화장실 가는 것을 참아 허리가 더 아팠는지도 모른다.

그 뒤로 두 시간 마다 잠에서 깼다. 지금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엄청난 추위가 찾아왔다. 한번은 얼굴에 차가운 서리가 후두둑 떨어져 놀라서 눈을 뜨기도 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거리고 손으로 핫팩을 더듬거렸다. “차라리 잠들지 않고 싶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던 이선경 중위의 말이 절실하게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 우리는 살아남았다! <둘째 날 오전 6시 30분>





결국 동이 텄다. “기상하십시오.”라는 경계 근무병의 외침이 예리하게 꽂히자 눈도 떠졌다. 여전히 추워서 입술을 떨렸지만 결국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들었다.

지금 기자에게 개그맨 허경환이 빙의 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영하 20도 혹한기 훈련에서 1박을 해봐야. 아, 우리집 방바닥이 ‘용광로’였구나 할거야.”

간밤 추위를 견딘 ‘용사’들은 일조점호를 받았다. 엄지손을 치켜드는 ‘독수리’ 부호는 당연히 빼놓을 수 없었다. 병사들과 “어젯밤 정말 춥지 않았냐.”고 안부를 주고 받으며 아침 식사를 기다렸다.

아침 메뉴는 더욱 기대가 됐다. 일명 ‘군대리아’라고 불리는 버거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차원석 병장은 “추운 날 빵은 금방 얼고 배가 빨리 꺼진다.”고 볼멘 소리를 했으나 기자는 말로만 듣던 군대리아를 직접 먹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였다.

군대리아는 빵, 패티, 샐러드, 잼과 함께 배식됐다. 함께 간 예비역 선배 기자의 조언에 따라 일회용 장갑을 낀 뒤 빵에 패티와 샐러드를 알맞게 넣은 뒤 잼을 뿌려 먹었다. 솔직히 맛은 평범했다. 고등학교 시절 매점에서 즐겨 먹었던 ‘슈퍼용’ 햄버거와 비슷한 맛이었으나 잼과 샐러드를 넣어 먹으니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 훈련을 마치고…



식사까지 마치니 부대 측과 미리 예정해둔 취재 일정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비록 1박 2일이었으나 동고동락했던 소대원들이 이런 생활을 이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격훈련에 이어 두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자 역시 고민이 많았다. 그들의 고충을 생생히 알리고 군대에 대해 낯선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이 목표였으나 병사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1박 2일 동안 혹한기 일정을 따라해보고 그들의 고충을 다 이해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취재진의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나 애인을 군대에 보낸 뒤 걱정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만이라도 군대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고충을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기자는 만족하고 싶다.

크리스마스로 앞두고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에 젖은 가운데 추운 날씨에도 군대에서 젊음의 날들을 보내는 장병들에게 추위도 모두 날려 버릴만큼 따뜻한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취재를 허락해준 군 부대와 회사에게도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밝힌다.



동영상=김상인 VJ bowwow@seoul.co.kr

사진=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

파주=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