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노+] 1억9300만 년 전부터 공룡은 무리 지어 다녔다

무사사우루스, 알, 성체, 새끼 무리의 복원도
영화 ‘쥐라기 공원’은 과거 공룡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한 설정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늑대처럼 무리를 이뤄 사냥하는 소형 육식 공룡인 ‘랩터’의 역할이 매우 비중 다뤄진 것이 대표적이다. 공룡이 지능이 낮고 혼자 사냥하는 거대한 도마뱀이 아니라 사회성을 지닌 영리한 동물로 묘사된 것이다.

물론 벨로키랍토르(Velociraptor) 같은 소형 수각류 공룡들이 실제로 무리 지어 사냥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화석으로는 알기 힘들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공룡이라도 홍수에 휩쓸리면 한 장소에 매몰될 수도 있고 반대로 함께 살았던 공룡이라도 죽을 때는 따로 죽을 수 있다. 발자국 화석이 단서가 될 수 있으나 단지 같은 방향으로 걸었던 것인지, 아니면 진짜 무리 지어 이동했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생물학자들은 가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기도 한다.

미국,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과학자팀은 우연한 기회에 쥐라기 초기인 1억9300만 년 전 공룡이 무리 지어 다녔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2013년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의 쥐라기 초기 지층에서 공룡알 화석 100개를 포함해 수많은 공룡 골격 화석을 발견했다. 공룡알 화석을 유럽 싱크로트론 방사선 시설(ESRF)의 고에너지 X선을 이용해 알을 파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분석한 결과 모두 무사우루스 파타고니쿠스(Mussaurus patagonicus)의 공룡알이었다.

무사우루스는 쥐라기 전반 남미 지역에 번성한 초기 용각류 초식 공룡으로 나중에 등장하는 거대 초식 공룡의 조상이다. 수많은 어미에서 나온 알 화석이 동시에 발견된 점으로 볼 때 화석이 발견된 곳은 무사우루스가 현생 조류처럼 무리를 형성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 장소로 추정된다. 더 놀라운 점은 아직 어린 공룡들의 화석이 성체와 독립해서 좀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된 것이다.
공룡알 속에 있는 새끼 골격 화석
같은 지층에서 나온 화산재를 생각하면 수많은 무사우루스가 한꺼번에 화석이 된 이유는 같은 대규모 화산 폭발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알과 어린 개체들은 쏟아지는 화산재를 피하지 못하고 함께 화산재에 매몰됐다. 연구팀은 성체 없이 어린 개체들만 함께 매몰된 점에 주목했다. 이는 어린 공룡들이 성체와는 별도로 그룹을 형성해서 무리 지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공룡도 태어날 때는 알에서 태어난다. 알은 크기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공룡 새끼도 태어날 때는 작을 수밖에 없다. 워낙 크기 차이가 큰 데다 먹이도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아서 공룡 새끼는 성체와 독립해 무리를 지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성체 화석이 발견된 곳에선 새끼 화석이 없고 새끼 화석이 발견된 장소에는 성체 화석이 없다는 사실은 이 가설을 뒷받침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번 발견은 가장 오래된 공룡 무리 짓기의 증거보다 4000만 년 더 오래된 것이다.

이렇게 초기부터 무리를 형성했다면, 많은 공룡 종에서 무리 지어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천적의 위협에서 자신을 방어하거나 혹은 협력해 사냥하기 위해 무리를 형성하는 일은 현재 수많은 동물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공룡도 예외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혼자보다 여럿이 뭉치는 게 유리한 건 2억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