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간 베트남 민간인 대학살 현장 찾아 선행하는 퇴역 미군 [월드피플+]

미라이대학살 희생자 504명 추모식에서 퇴역 미군 마이크 보엠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미국 역사의 수치로 여겨지는 ‘미라이 민간인 대학살’이 자행됐던 베트남 땅을 찾아 30년간 선행을 이어가고 있는 퇴역 미군의 이야기가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3월 16일 꽝응아이성 선띤현 미라이 마을에서 미군은 마을 사람들 504명을 마구잡이로 죽였다. 이후 ‘미라이 학살’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민간인 대학살로 기록되었다.

55년이 지난 이달 16일, 꽝응아이성 정부는 미군에 의해 무고하게 살해된 504명의 민간인들을 위한 추모식을 가졌다고 VN익스프레스는 전했다. 퇴역 미군 마이크 보엠은 추모식에 참가해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한 바이올린을 켰다.

마이크 보엠은 미라이 학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꽝응아이 전쟁의 현장에 있었다. 그는 “당시 미라이 마을의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함께 극도의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결국 지난 1992년 미라이 땅으로 돌아왔다. 그는 “전쟁은 무고한 베트남인들의 육신을 죽었고, 미군들의 영혼을 죽였다”면서 “당시 우리는 17살에서 19살가량의 어린아이들이었다. 미국 정부가 내리는 지시가 정의라고 믿었지만, 진실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퇴역 미군들은 약이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과거를 극복하고 베트남을 돕기 위해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 30년간 꽝응아이성의 빈곤퇴치에 앞장서며 라이스페이퍼 생산을 지원하는 마이크 보엠
또한 “베트남 전쟁 이후 1992년 처음으로 돌아온 베트남에서 분노, 죄책감, 슬픔을 느끼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바이올린을 잘 켜는 것은 아니지만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진심을 담아 연주했다”고 전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하고, 집을 지어 주었다. 기부금을 모아 꽝응아이 지역의 기아 퇴치와 빈곤 구제에 앞장섰다. 마을 사람들이 소와 돼지를 기르고, 라이스페이퍼를 생산해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또한 국제 사회에 미라이 학살의 피해 사실을 알리며 기부금을 모아 고엽제 피해자 지원, 빈곤 학생의 장학금, 학교의 수도 공사 지원 등의 일을 해오고 있다. 아직까지 피해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주민들도 마이크 보엠의 진심 어린 선행에 감동했고, 꽝응아이성 여성연합은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한편 지난 1998년 미라이 학살 30주년을 맞아 ‘미라이의 바이올린 소리'(The sound of violin in My Lai)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2000년 아태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바로 마이크 보엠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