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도 사람처럼 아픈 애벌레에게 ‘약’ 먹인다 [핵잼 사이언스]
입력 2026 09 06 16:43
수정 2026 09 06 16:45
야생 동물들도 몸이 좋지 않을 땐 약용 성분이 있는 식물을 찾아 먹는다. 예를 들어 야생 침팬지는 진통 및 항균 효과가 있는 식물을 찾아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이런 치료 행동이 높은 지능을 지닌 일부 동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벨기에 루벤 대학교와 스페인 바야돌리드 대학교의 연구팀은 ‘서양뒤영벌’(학명 Bombus terrestris)이 감염이 발생했을 때 치료 성분이 있는 꿀을 찾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아니라 아픈 애벌레에게 먹일 약을 구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실험 대상 물질로 ‘케르세틴’(quercetin)을 선택했다. 케르세틴은 야채나 과일 등 식물에 있는 노란색 계열의 천연 플라보노이드(폴리페놀) 성분으로 인체 내에서 강력한 항산화 및 항염증 작용을 하는 물질로 잘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서양뒤영벌이 이 물질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지 검증했다.
연구팀은 실험용 텐트를 마련하고 그 안에 벌집을 마련한 후 8개의 로봇 꽃(파란색 4개, 노란색 4개)을 설치했다. 이 로봇 꽃들은 각각 순수한 설탕물 또는 케르세틴이 함유된 설탕물이 들어 있다. 따라서 색상과 무관하게 케르세틴이 함유된 꿀을 찾는지 검증할 수 있다.
연구팀은 꿀벌을 세 그룹으로 나눠서 한 그룹은 주로 꿀벌 유충을 감염시켜 죽이는 곰팡이인 ‘아스코스페라 아피스’에 노출시켰고, 다른 그룹은 성체 꿀벌을 감염시키는 장내 세균인 ‘세라티아 마르세센스’에 노출시켰다. 대조군은 멸균된 설탕 용액을 섞은 꽃가루를 먹였다. 각 로봇 꽃의 중앙 먹이 공급 구멍 내부에 있는 센서가 모든 꿀벌의 방문을 기록했고, 꽃은 방문 후 자동으로 꿀을 다시 채워 부족하지 않게 유지했다.
5일간 자유롭게 먹이를 채집할 시간을 주자 아스코스페라 아피스 곰팡이에 노출된 꿀벌들은 케르세틴이 함유된 꽃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꽃에서 꿀을 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반면 세라티아 마르세센스 박테리아에 노출된 개체와 건강한 대조군은 케르세틴에 대한 특별한 선호도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반응이 개체 치료보다 집단 보호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 곰팡이는 성체가 아니라 유충을 감염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약을 수집한 셈이다. 이는 곰팡이 감염 시 케르세틴 함유 꿀을 먹이는 것이 개체보다 군집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선택된 형질로 풀이된다.
반면 오히려 성체를 직접 감염시키는 박테리아 감염 시에는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는 케르세틴 농도가 직접 항박테리아 효과를 보기에는 낮았을 가능성과 감염이 너무 치명적이어서 행동 변화를 지속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이번 연구는 섭취가 실제로 감염 수준을 낮추거나 유충 생존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치료 효과에 의한 것인지는 검증하지 못했다. 하지만 꿀벌처럼 먹이를 공유하는 사회적 곤충이 군집 전체를 위해 천연 약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앞으로 후속 연구 결과가 주목된다.
고든 정 과학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