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에도 ‘꿀 빠는’ 박쥐의 비결은 바로 이것 [핵잼 사이언스]

드라큘라 영화의 영향으로 박쥐라고 하면 피를 빨아먹는 동물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흡혈박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보다 야간에 곤충을 잡아먹거나 낮에 과일을 먹는 박쥐가 훨씬 흔하다. 사실 박쥐는 해충의 개체수를 조절하고 식물의 씨앗을 뿌려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박쥐가 생태계에 기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꿀벌이나 나비처럼 꽃가루를 옮겨 주는 일이다. 일부 박쥐들은 긴 혀와 뛰어난 비행 능력을 이용해 벌새처럼 꿀을 먹고 산다. 과학자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공중에 정지한 채로 긴 혀를 내밀어 순식간에 꿀을 빨아 먹는 박쥐의 능력에 감탄해왔다.

다트머스 대학 과학자들은 박쥐의 놀라운 균형 유지 능력의 비밀을 파헤쳤다. 낮에 꿀을 먹는 벌새와 달리 박쥐의 경우 깜깜한 밤에 꿀을 빨아 먹는다. 꽃도 박쥐에 맞게 진화해 아주 깊숙한 안쪽에 꿀을 숨겨 놨기 때문에 박쥐는 종종 머리를 꽃 속에 들이밀고 긴 혀로 꿀을 먹어야 한다. 물론 꽃 입장에서는 꽃가루를 충분히 묻히기 위해서이지만, 박쥐 입장에서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박쥐의 장기인 초음파는 머리를 꽃에 들이미는 순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중남미에 서식하는 주걱박쥐의 일종인 '팔라스 긴혀 박쥐'(Pallas’s long-tongued bat, 학명 Glossophaga soricina)를 잡아 초음파 없이도 자세를 잡는 이유를 실험실에서 조사했다. 연구팀은 박쥐의 긴 수염이 비결일 것으로 생각하고 유리로 만든 꽃 대용물에 꿀을 담아 어두운 실험실에서 적외선 카메라로 박쥐의 행동을 관찰했다.

수염을 깎지 않은 야생 상태의 박쥐는 어렵지 않게 꽃과 비슷한 긴 유리관에서 꿀을 빨아 먹었다. 하지만 수염을 깎은 후에는 제대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조금 밖에 꿀을 먹지 못했다. 고양이 수염처럼 박쥐의 수염 역시 어두운 환경에서 정확한 자세를 잡도록 도와준다는 가설을 검증한 것이다. 실험에 쓰인 박쥐들은 수염이 다시 나기를 기다려 야생으로 안전하게 방사했다.

팔라스 긴혀 박쥐는 벌새처럼 대사율이 매우 높은 동물로 사실 포유류에서 가장 대사율이 높다. 따라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꿀을 빠른 속도로 빨아먹는 것이 중요하다. 팔라스 긴혀 박쥐의 수염은 이런 환경에서 특별하게 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초음파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염의 촉각을 통해 정확한 각도와 위치를 잡는 것이다. 징그럽게만 생각하는 박쥐에 숨어 있던 놀라운 비밀이다.
 


고든 정 과학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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