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같은 주문을 외워봐.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 [으른들의 미술사] 

존 싱어 사전트,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 1885, 캔버스에 유채, 174x154cm, 런던 테이트 브리튼.
존 싱어 사전트,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 1885, 캔버스에 유채, 174x154cm, 런던 테이트 브리튼.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가 그린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라는 독특한 제목은 1880년대 대중가요의 후렴구에서 따온 말이다.

시간은 이제 막 해가 지려는 순간이다. 사전트는 어스름해지는 해질녘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로 해가 지는 정원에서 그렸다. 어린 두 소녀가 이제 막 등불을 밝히려는 순간은 어린 시절 순수한 기억 속 이미지다.

중세도시 코츠월드

두 소녀의 모델은 사전트의 지인인 프레데릭 바나드(Frederick Barnard)의 딸들로 11살 돌리와 7살 폴리 자매다. 원래 모델 아이가 있었으나 이 아이들은 머리 색깔 때문에 선정되었다. 아이들은 중국 등에 테이프를 붙이려 하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코츠월드(Cotswold) 브로드웨이에 있는 파넘하우스(Farnham House)의 정원이다. 코츠월드는 중세 전원도시로 박제된 곳이라 지금도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인기 여행지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지친 영국 사람들은 중세 전원 마을을 꿈꾸었다. 이곳은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펀에이본(Stratford-upon-Avon)과 지리적으로 가깝다.

이 파넘하우스는 미국 화가 프란시스 밀레가 먼저 정착해 임대목적으로 구입한 집이다. 밀레 덕분에 많은 미국 화가들이 이곳에서 정착하며 미국인 마을을 이루었다. 사전트는 대형 작품을 할 때 큰 공간이 필요해 이곳에 스튜디오를 얻었다.  
브로드웨이 패넘 하우스 2016년 모습.
브로드웨이 패넘 하우스 2016년 모습.
스캔들을 피해 온 곳, 코츠월드 브로드웨이

사전트는 1884년 '마담 X'가 일으킨 스캔들 때문에 쫒기듯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스캔들이라고 해봐야 별거 아닌 사건이었다. 사전트가 일으킨 스캔들이란 고작 여성 모델의 흘러내린 어깨끈을 그렸다는게 다였다. 그럼에도 부끄럼 많고 수줍음 많은 사전트는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는 일을 견딜 수 없었다.

사전트는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전트는 세계적 도시 파리에서 일으킨 스캔들을 피해 멀리 멀리 영국의 작은 전원마을 브로드웨이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온 사전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순수한 아이들의 작은 세상이었다.등불을 켜고 있는 이 아이들은 스캔들 걱정도 없었고 화가라는 직업인의 앞날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사전트가 그린 코츠월드는 피터 팬이 사는 네버랜드 같은 곳이었다. 이제 취업, 대출이자, 노후 준비 걱정이 없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주문을 외워보자. 카네이션과 백합과 장미가 가득한 정원으로.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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